오늘 순서인 사무엘기하 6장을 읽다가, 사울의 딸 미갈의 마음을 상상해봤다.
미갈은 다윗을 사랑(삼상 18:20)했고, 블레셋 남자 이백 명의 포피를 바친 다윗의 아내가 되었다(삼상 18:27). 그러나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하자 미갈은 다윗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목숨을 건지게(삼상19:12) 한다. 사울의 이후로도 계속된 추격에 다윗은 멀리 피하여 몇 년의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 기간 중에 다윗은 아비가일, 아히노암 두 아내를 맞이 했고, 사울은 미갈을 발디에게 주었다(삼상 25:42-44).
시간이 지나서, 사울은 죽고 세력이 많이 약해진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유다의 왕인 다윗이 미갈을 돌려줄 것을 요구(삼하 2:14)하여, 미갈은 울며 따라온 현남편 발디(엘? 삼하 2:16)을 떠나 다윗에게 가게 된다.
오늘 내가 읽은 부분은, 주님의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뻐 뛰면서 맨 몸을 드러내며 춤 추는 (삼하 6:20) 다윗을 향해 미갈이, 마음 속으로 다윗을 업신여겨(삼하 6:16) 말하는 내용이다. 미갈은 '신하들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그렇게 맨 몸을 드러내고 춤추면 다윗의 체통이 어찌 되겠냐?'고 했고, 다윗은 '당신 집안은 마다하시고, 나를 통치자로 세우신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겠다. 주님을 찬양하는 일이라면 나는 이보다 더 낮아지고 싶다. 그래도 당신이 말한 그 여자들은 나를 더욱더 존경할 것이오.'라고 대꾸한다. 사무엘기하 6장은, 이런 일 때문에 사울의 딸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하였다고 하며 끝난다.
미갈은 왜 다윗을 업신여겼을까? 체통 어쩌고 할 때, 미갈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다윗의 대꾸를 들으며, 미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그 시절에 자식 없이 그리고 다윗의 사랑 없이(내 상상) 살아가는 미갈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여기서부터는 완전히 나 혼자의 상상이다. 신앙적 지식은 물론 바닥에 가깝고, 믿음도 업 앤 다운이 심하고, 내 개인의 경험과 감정에 기반을 둔, 말하자면 내가 근거없이 쓰는 소설에 가깝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지만, 여러 불가피한 시대적 상황적 일들로, 그 사랑을 outing 해보지고 못하고, 받아보지도 못한 것같다. 다윗이 미갈을 사랑했다는 구절이 내 기억에는 없다. 사랑은 참 기이하여서, 사랑이 꺽인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겼어도 미워했어도 아니 죽이고 싶어했다 해도, 전혀 놀랄 것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무슨 화 낼 일이냐 싶은 것도, 사랑이 꺽인 사람에게는 분노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때로 미갈도 사랑했던 다윗의 사랑을 갈구했겠지, 사랑스럽게 보이고 싶어서 노력도 했겠지, 입가에 미소도 머금고, 분향도 바르고, 은근히 비치는 옷도 입어보고, 일부러 다윗 앞을 지나갈 기회를 만들려고 우연인듯 먼 길을 돌아돌아 지나가기도 했겠지, 그러나 그런 노력이 번번히 꺽이면서, 미갈의 입가에는 비꼼과 비웃음이 깊게 깊게 패였겠지, 단장도 점점 없어지고, 혼자서 혹시나 하고 기대하다가 상처 받기를 거듭하면서, 일부러 더 관심이 없는 듯 삐딱하게 말하고 행동 했겠지. 그것도 초반에는 삐딱하고 쌀쌀하게 대꾸해서 자기가 속 상하니까 관심을 가져달라는 표현을 그렇게 했겠지. 그런 상태에서 다윗의 맨 몸이 다른 여자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무척 싫었을거야, 그것이 대신의 아내이든 여종이든 그들이 다윗에게 관심을 갖고 환호를 하며 함께 기뻐하는 것 자체가 화가 났을거야.
다윗의 차가운 대꾸를 들으며, 미갈은 가슴이 철렁 했을거야. 다윗에게 전혀 미갈 자신을 향한 사랑이 없음을 깨닫으며, 마음이 찢어기게 아팠겠지. 다윗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0.0000001% 혹시나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것이 무너졌으니. 남편이 아내와 한 편이 아니고, 아내를 니네 식구들은 이라고 선을 그을 때, 이미 알고 있는 사랑없음의 사실을, 이제 서로 공식화 했으니, 더 이상 착각의 Lux 도 없어졌다. 미갈은 다윗의 이 대꾸를 듣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화를 냈을까, 휭하게 몸을 돌려 나갔을까,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눈물을 보였을까, 다윗 당신을 존경하는 그 여자들에게 가라고 소리를 질렀을까? 뭐라고 반응했든지, 다 같은 것 아니었을까? 이 일 후에 다윗과 미갈은 서로에게 있어도 없는 존재로 살아갔을 것이다. 미갈은 두고 두고 그 날 그 대화를 테잎 돌리듯 돌리고 돌리며 생각했겠지, 후회와 미움과 억울함과 한탄으로 미갈의 심장도 갈라지고 갈라지다가 오래된 테잎이 결국 힘없이 끊어지듯 미갈의 심장도 스르르 멈추었겠지. (미갈이 일찍 죽은 언니의 아이들을 키웠다고 하니, 그래도 좀 마음 붙일 곳은 있었겠다 싶다.)
사울과 다윗의 권력 욕심과 싸움의 피해자인 미갈은 정치적 희생양이고, 미갈은 다윗을 사랑했지만, 다윗의 영성을 이해 못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했던 것같다.
미갈은 한 인간으로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세웠어야 했고, 자존심이 상해도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남편인 하나님의 사람 다윗 앞에 좀 더 솔직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다윗의 사랑을 끌어낼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사랑은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것은 순전히 나에게 하는 얘기이다. 어느 순간이라도, 방향을 전환하여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꿀 수 있는 것이 복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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