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you know all things. You know that I love you.
주님은 모든 것을 아십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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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아니었지. 늘 그렇듯이 아무 것도 아니었어.
아직 엔은 화장실에 조금 더 있을 것으로 보였고, 난 침대에 가기 전에 조금 시간이 있어서, 서재에서 유툽을 꼈지. 요즘 코로나 다음으로 핫하게 느껴지는 주식시장의 오늘 상황을 잠깐 듣고 싶었거든. 마침 유명한 사경인회계사나 삼프로에 나와서 상장폐지 종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어서 (정보보다는 지식 방향), 관심있게 집중해서 듣고 있는데, 엔이 침실로 가는 것을 보고, 잠시 후 끄고 나도 침대로 갔어. 저녁 식사를 적게 했더니 훨씬 컨디션이 좋다는 생각과 약간의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말이지.
침대에서 엔이 뭐 하다가 왔냐고 가볍게 묻기에, 삼프로니 사경인회계사니 이런 것은 엔은 모르겠고 우리 보유 종목 중에 상장폐지 가능성이 보이는 belli*을 대처하는 지금 우리 방법이 맞는지 엔과 확인해보려고 얘기를 꺼냈어. 엔은 나의 두서없는 resources 중에서 의미를 뽑아내는 비상한 재주가 있거든.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들은 정리되지 않은 얘기들을 방출하고 엔은 엑기스를 잡아내곤 하지. 그런데 어제 밤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갔어. belli* 얘기가 엔에게는 내가 엔이 주식을 잘못 선택해서 손해가 난 것을 지적하는 것으로 들렸나봐. 나에게 왜 자꾸 belli*의 손실에 집착하냐고 화을 내더라구. 아니라구, 난 오히려 엔의 어카운트가 늘어난 것이 신통방통한 사람이므로 전혀 belli*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구, 플러스가 마이너스 보다 훨씬 큰데, 그게 무슨 소리냐구, 내가 말해도 엔은 내가 이제까지 보여준 행동이 자기 말의 증거라며 몹시 기분 나빠했어.
참, 왜 내 말을 믿지 않을까? 사람 사이에 오해할 수도 있지만, 내가 아니라고 하는데, 엔은 자기가 오해할 확률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는 걸까? 그럼, 아니라고 하는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침대 끝에 누워서 생각해봤다. (0)물론 나도 엔을 오해한 적이 많이 있겠지. 그렇지만, 엔이 아니라고 하면, 아닌 것을 믿는다. 적어도 엔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믿는다. 엔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엔은 착각할 수는 있지만, 내게 거짓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렇게 이렇게 해야지/하지 말아야지, 내가 오해하게 하잖아'라고 말할 수 있
지만, 엔이 거짓말을 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1) 엔과 입장을 바꿔보자. 나라면 안그래 그런 것말고, 지금 엔이 느끼는 것처럼 내가 belli* 샀는데, 엔이 그것으로 인한 손실을 자꾸 얘기해서, 기분이 나쁘다고 입장을 바꿔보자. (조금 어렵지만, 생각을 해보니) 엔이 그렇게 느끼게 내가 행동한 것에 대해 사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주님 안에서 이것은 무슨 의미인가? 내가 요즘 주식 시장에 너무 관심이 많아서, 주님께 무뎌지는 것에 대한 알림인가? (3) 새로 형성된 엔과의 불편함은 또 얼마나 지속되는 것인가? (4) 주식 시장 바닥권인데 엔과 의논해서 좀 더 매입할 생각이었는데, 그것은 물 건너간 것인가? (5) 하루가 가기 전에 화를 풀라고 성경에 써있고, 취침 기도도 해야 하는데, 내가 지금 기분에 묻히지 말고 용기를 내서 입을 열어야 겠구나.
'미안해, 내 의도는 안그랬지만 내 행동이 당신이 그렇게 느끼게 했다니, 미안해.' 그리고 취침 기도를 했다. 말하기 전에도 기도했는데, 주님이 시키시는대로 평화를 위해 내 부족한 것만 보고 미안하다고 했는데,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부부로 산다는 것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이 아니면 이렇게 나를 무너질 정도로 힘들게 할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딸과는 결이 다른 것이, 그 아이와 관련해서는 내가 무너지지 않는다, 힘들고 심장이 끊어질 듯이 괴로와도 어떻게 해서든 내가 버팀목이 되어야 하기에 무너지지 않는다.) 엔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혹시 내가 그것을 못 유지하였나 돌아본다. 이 거리를 둔다는 것이 내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부부로서의 거리는 무엇인가. 어떻게 한 몸이면서, 희노애락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유지하여야 하는 건강한 거리는 얼마인지, 모르겠다. 내 안에 있는 장난끼 미숙한 생각 감정 계획 신앙 많은 것을 스스럼 없이 나누면서도, 지켜야 하는 + 지켜주어야 하는 거리는 얼만큼이며, 어디에서 멈춰야 하는지, 너무 어렵다.
엔과 너무 가까와지고 혹시 내 안에 엔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것은 아닌가, 소프트하고 스위트하고 감정이 풍부한 내가, 나와는 조금 다른 엔에게 그런 표현을 원한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렇지 않은 모습에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렇게 불편한 것은 아닌지, 나를 살펴보게 된다.
이것은 너무 조심스럽다. 내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혼돈스럽다. 기도를 한다.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사랑하는 부부는 어떤 것인지. 기도를 한다. 내게 우선 순위를 다시 확인한다. 나의 부족함도 나의 지나침도 주님께서 아신다. 나는 주님 안에서 자유롭다. 그러다가 내가 주님을 사랑함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는 고백이 나왔다. 이것이 영어로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벌써 두어 시간째 뒤치닥 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Lord, you know all things. You know that I love you. 내 마음대로 사랑하고, 그 사랑이 지나쳐도 그 사랑이 볼품없어도, 언제나 나를 품어 주시는 넉넉한 주님. 엔의 많은 좋은 점에도 불구하고 그가 너그럽지 않다는 것이 참 힘든데, 주님은 너그러움의 최고봉이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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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엔과의 거리 두기" 부분을 쓰면서, 여러 번 쓰고 지우고 고쳐 다시 쓰고 했다. 내 마음 생각 속에 있는 것이 정확하게 표현되지 않아서 이기도 하지만, 내 마음 생각이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아서가 더 큰 이유라는 것을 알았다. 무언가 내가 엔을 위해 멈춰주려는 느낌과 엔의 영역을 지켜주려는 느낌이 있는데, 나도 아닌 남인 엔의 바운더리를 잘 알수 없어서 애쓰는 뉘앙스가 있다.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회피라는 생각을 했다. 배려 깊은 것같지만 사실은 나 스스로 딱 버티고 서지 못한 모습이다. 나의 바운더리를 나는 아는가? 엔의 바운더리를 알기 전에 나의 바운더리를 찾는 것이 순서 아닐까? 엔의 바운더리는 엔의 권한이니 알기도 어렵고 엔이 바꾸면, 내가 생각한 그의 바운더리 라인이 또 틀리는 것 아닌가? 나는 건강한 어른이 되기 위해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 not이기적임으로, 매사에 나의 원함, 나의 기쁨, 나에 충실해야 한다. 내가 그런대로 제대로 만들어졌음을 믿어야 한다(=창조주가 나를 제대로 만드셨음을 믿어야 한다.) 그 판단은 엔이나 남이 아닌 내가 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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